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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꼬나보기

유승민 사퇴, 대통령이 만들어낸 새로운 대선주자

최근 2주동안 주요 포털과 언론사의 키워드는 온통 '유승민', '유승민'으로 가득 찼습니다.

결국 의원총회에서 사퇴 권고 결의안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어한다고 찍어낸 최초의 원내대표입니다.



이 사건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드리죠.


정부에서 국회법 개정안 싫다고 싫다고 안 받는다고 안 받는다고 했고,

국회에서는 여야 협의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거니 받으라고 받으라고 했고,


막상 올라오니까 대통령이 

"와 내가 그렇게 싫다고 계속 말했는데 끝내 올려?"

거부권을 행사하고 여당을 마구 공격합니다.




대통령이 했던 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나 유승민한테 완전 열받았고, 내년 총선 때 새누리당을 심판해서 나의 이 짜증을 달래달라. 쟤 안 나가면 나는 새누리당의 안티가 될거야"였고,


노인들을 비롯한 닥치고 박근혜 응원군이 아직도 견고한 상태에서 

겁먹은 여당이 부랴부랴 유승민 원내대표를 쫓아낸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삐짐'은, 대한민국 역사에 유래가 없는 '스타 원내대표'를 만들어냈습니다.

당 대표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도 없고, 다선 의원의 좋은 '스펙' 정도로 여겨지던 원내대표 자리가 이렇게 핫한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3선의 유승민 의원은 박대통령의 측근 출신으로 강아지도 당선된다는 대구 지역구의 한 의원에 불과했습니다.

경제통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그것도 아는 사람이나 아는 수식어지, 특별한 캐릭터도 없었죠.


지난 2주동안 유승민 의원은 한순간에 '합리적 보수','개혁적 보수'의 아이콘으로 부상해버렸습니다.

박근혜 정권을 만든 일등공신 중의 하나임에 분명한데, 새누리당에서 '민주주의'를 말하게 하는 아이콘이 돼버렸어요.


재밌는 것은, 유승민 의원을 전국구 스타로 만든 것이 바로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은 대통령이라는 겁니다.

절차상 하자가 전혀 없었던 의정 활동을 '아몰랑 나 삐졌어' 한마디로 스타를 만든거죠.

2주동안 온통 유승민 유승민 해대는 동안 가장 기분나빴을 사람이 과연 박대통령이었을까요?

아마도 김무성 대표가 가장 심기가 불편했을 겁니다.

거의 독주체제를 만들다시피 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라이벌이 등장하게 돼버렸으니 말이죠.

(교묘하게 사퇴 분위기로 이끌고 가는 자가 누구였는지 잘 보세요)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근데 알고보면 지금 김무성을 저 자리에 있게 한 것도 지난 총선 당시 '친박'과의 갈등에서 비롯됐습니다. 

그 때 김무성은 백의종군 선언을 하며 당을 지킨 남자, 신뢰를 지킨 남자라는 이미지를 강력하게 심는데 성공합니다.


정치에서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공정하게 판단받는 경우는 죽고 나서입니다. 김무성의 과거 전력들은 총선 때의 이미지 한 번으로

완전히 새롭게 입혀집니다.


유승민 의원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측근 중의 측근이었고, 친박의 아이콘이었고, 안전하게 3선까지 성공한.

별 색깔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그에게 자신감을 느꼈습니다.

박근혜 브랜드가 강력하게 남아있는 노년층이 있는 한 그가 바로 새누리당의 차기 후보가 되기는 힘들 겁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 원희룡,남경필 등이 가지고 있던 개혁적 보수라고 하는 이미지를 아무런 노력없이 깔끔하게 입었습니다.당내 주류와도 비교적 원만한 소통이 되는 그의 행보를 볼 때, 그는 이미 스타가 됐습니다.


상대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이 상대를 향한 최고의 선물을 준 셈입니다.


유승민 의원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는 없습니다.

분명한건 그는 박대통령에게 고마워하고 있을겁니다.


(이 글은 본래 '얻어걸린 인지도'라는 주제로 잡아 PR 사례로 만들려고 했는데 그냥 정치 얘기가 돼버렸네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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